“출산 후 21일, 집중 케어” 미국 맘 사로잡은 K산후조리
미국은 산모가 아기를 낳은 직후 바로 퇴원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어서 ‘산후조리’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그러나 최근 출산과 관련된 경제적 격차와 높은 산모 사망률 등의 문제로 인해, 미국에서도 산후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출산 후 산모를 21일 동안 집중적으로 돌보는 산후조리 시스템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로, 이를 표현하는 영어 단어 ‘sanhujori’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리서치 회사 퓨처마켓인사이트는 최근 산후조리원을 포함한 미국의 ‘출산 코칭’ 시장 규모가 2033년에는 257억달러(약 36조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3월, 미국 버지니아주 워터마크 호텔에 문을 연 ‘사누 산후조리원(Sanu Post-partum Retreat·이하 사누)’은 한국식 산후조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누 직원은 의사가 설계한 개인 맞춤형 케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24시간 산모와 신생아를 세심하게 돌본다. 지난해 11월,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에서 표준인 이 프로그램이 최근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도입됐다”며사누를 소개했다. 사누를 만든 줄리아 킴 최고경영자(CEO)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상원의원 보좌관 출신… 엄마 경험이 모태
사누는 바바라 파볼라 버지니아주 상원의원과 한국계 마크 김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의 수석보좌관으로 일했던 한인 2세 줄리아 킴이 설립했다. 킴 대표는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 관련 책을 읽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아 활용하며, 의사와 상담하는 등 철저히 준비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첫째를 출산한 후 회복실에서 아이와 단둘이 남게 되자, 그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킴 대표는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니 혼란스러웠다”고 회상했다.
2년 전인 2023년 둘째를 낳았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킴 대표는 “아이가 태어난 것은 큰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산후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다”며 “홀로 아이를 돌봐야 했던 경험을 통해 부모에게 더 나은 지원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국의 산후조리 전통이 미국 산모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누가 탄생했다.
사누는 우리말 ‘산후’의 발음을 외국인이 더 쉽게 인식하도록 변형한 단어다. 킴 대표는 한국식 산후조리에 대해 “세심하고 따뜻하며 친밀한 돌봄”이라며 “돌봄 제공자의 전문성과 헌신이 모든 디테일에 스며들어 있어, 막 출산한 엄마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높은 수준의 돌봄이 당연시되는 문화에서 발전한 한국식 산후조리는 어떤 가격대에서도 기대를 뛰어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식 산후조리 장점을 사누에 고스란히 녹여 담아냈다. 전문 간병인으로 구성된 사누 팀은 24시간 산모와 신생아를 돌보며, 한국 전통 음식을 포함한 식사 서비스, 산후 마사지, 산모 정신 건강 치료 등 다양한 웰빙 서비스를 제공한다. 호텔에 자리한 만큼 산모에게 ‘컨시어지 서비스’도 제공한다. 컨시어지는 고객 일을 대신 처리하는 일종의 개인 비서로, 중세 시대 성에서 각 방을 관리하던 집사에서 유래했다.
미국 산모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누 서비스는 신생아실 케어다. 킴 대표는 “필요할 때 언제든 신생아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산모에게 큰 안도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사누의 또 다른 장점으로 육아 교육 프로그램을 꼽으며 “두 아이를 낳으며 실질적인 아이 돌봄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식은 곧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최고 1박 126만원 요금에도 미국 맘 ‘열광’
사누는 산모가 최소 3일 이상 500ft²(제곱피트·46.5㎡) 크기의 객실에 머물며 출산 후 회복하도록 돕는다. 워터마크 호텔 내 사누가 보유한 다섯 개의 스위트룸은 겉보기에는일반 호텔 객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객실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산모와 가족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산모 침대 옆에 놓인 바퀴 달린 유아용 침대, 옷장 위의 기저귀 갈이대, 고래 모양 아기 욕조, 간이 주방 등이 대표적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주목받은 사누는 올해 7월까지 예약이 꽉 찬 상태다. ‘스스로 모든 것을 극복하라’는 미국 문화 속에서 일과 육아 균형에 압박을 느끼던 미국 엄마가 사누의 세심한 돌봄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사누가 문을 연 지 1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사누를 이용한 산모는 100명을 넘어섰다.
사누의 1박 요금은 최고 880달러(약 126만원)다. 킴 대표는 “사누가 제공하는 산후조리는 때로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임대료, 산모와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팀의 고품질 돌봄 가치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가격을 책정했다. 한밤중 아이를 돌보는 시간당 비용으로 계산해 보면, 사누 서비스는 매우 합리적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누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건강한 가족,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사누의 중요한 운영 원칙 중 하나는 ‘판단하지 않는 태도’다. 킴 대표는 “사누는 산모의 모든 선택을 존중하고 지원한다”며 “분유든, 모유든 수유 방식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산모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사누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긍정적인 태도는 전염된다’는 믿음으로, 사누는 직원과 산모 가족 간 모든 상호작용에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사누의 목표는 미국에서 한국 스타일 산후조리를 일반화하는 것이다. 킴 대표는 “서비스를 주요 지역으로 확장해 더 많은 가족이 산후조리 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다”며 “모든 산모가 산후조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산후조리가 산모의 불안과 우울증을 완화해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워킹맘’의 생산성 향상 등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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